자폐가 생기는 원인, TV많이 보면 자폐?


"TV를 보면 자폐가 생긴다." 신생아를 처음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입니다. 아이가 TV를 오래 보면 말이 늦는다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경고는 물론, 심지어 자폐까지 생긴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하죠. 그런데 이 말, 과연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TV를 본다고 자폐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는 선천적인 뇌 발달의 차이로 생기는 신경발달장애이며, TV나 스마트폰 같은 미디어 기기가 원인이 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자폐의 원인, TV가 아니라 뇌의 발달입니다


자폐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의 의학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자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의 복합 작용으로 발생합니다.

첫째, 유전적 요인입니다. 가족 중 자폐 진단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형제나 자녀에게도 자폐가 나타날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수십 가지의 유전자 변이가 자폐와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둘째,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의 환경 요인입니다. 산모의 나이가 많을수록, 또는 임신 중 특정 약물 복용이나 바이러스 감염, 출산 중 뇌손상 등이 자폐 발생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확률일 뿐, 반드시 자폐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후천적 자극 환경의 영향입니다. 조기 성장기(0~3세)에 감각 자극과 상호작용이 부족하거나, 일방적인 미디어 노출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 언어와 사회성 발달에 지연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역시 '자폐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자폐적 행동을 강화시키는 환경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폐는 '스펙트럼'입니다. 모두가 같지 않습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는 자폐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어떤 아이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 눈맞춤조차 어려운 반면, 또 어떤 아이는 말도 잘하고 지능도 높지만 정서적 교류에 어려움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폐=심한 장애’라는 고정관념은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자폐를 하나의 개성, 또는 신경의 다양성(Neurodiversity)으로 받아들이는 시선도 늘고 있습니다. 증상의 심각성과 지능, 행동 특성에 따라 필요한 지원과 접근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진단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아이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 혹시 자폐일까요? – 자폐 조기 체크리스트


다음은 생후 18~36개월 아동에게서 자폐 경향을 의심해볼 수 있는 간단한 관찰 기준입니다. 아래 항목 중 3개 이상 해당된다면 전문의와 상담을 권장합니다.

  •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다
  • 눈을 잘 마주치지 않거나 시선을 회피한다
  • 의미 있는 말(엄마, 아빠 등)을 16개월 이후에도 하지 않는다
  •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지 않는다 (공유 관심 행동 부족)
  • 혼자만의 행동에 집착하거나 반복적인 몸짓(손 흔들기, 빙글빙글 돌기 등)을 자주 보인다
  • 상호 놀이(까꿍, 따라하기 등)를 잘 하지 않는다
  • 사회적 미소(미소에 미소로 반응하기)가 거의 없다
  • 감각에 과민하거나 무감각한 반응(소리에 깜짝 놀라거나 반대로 무시함)

이 체크리스트는 정식 진단을 위한 도구는 아니며, 단순한 참고용입니다. 자폐는 전문가의 평가와 종합적인 행동 관찰을 통해 진단되는 만큼, 의심이 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소아정신과나 발달클리닉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기 개입은 변화의 열쇠입니다


자폐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더라도 희망은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생후 18개월~36개월 사이, 즉 뇌가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기에 적절한 치료와 교육 개입을 받는다면, 자폐 특성이 상당 부분 완화되거나 기능적으로 회복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ABA 치료(응용행동분석), 감각통합치료, 언어치료, 부모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 등은 자폐 아동의 소통 능력과 사회성을 향상시키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줍니다. 실제로 조기 개입을 받은 아동 중 일부는 자라면서 자폐 진단 기준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부모가 바꿔야 할 시선 – 자폐는 '끝'이 아닙니다


‘자폐’라는 말은 많은 부모에게 큰 충격을 안깁니다. 하지만 자폐는 치료 불가능한 병이 아니며, 대부분의 경우 완치보다는 증상 완화와 기능 향상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폐 여부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아이의 발달을 민감하게 살피고, 필요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조기 대응하는 것입니다. TV를 본다고 자폐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폐가 있어도 몰라서 늦게 대응하는 것이 진짜 위험일 수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는 부모의 마음을 평온하게 합니다. 그리고 부모의 안정감은 아이의 성장에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불확실한 루머보다, 과학적인 정보와 따뜻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를 바라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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